23.10.11) 계연 25일 _ 유일 로그
하늘께서 이르실지니, 화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하늘의 뜻이 함께할 지어다.
그것은 아주 오래되고 끊어지지 않은 축복. 아주 오래되고 끊어지지 않은 약속.
화국(華國)에 나린 어두운 그림자는 실로 무엇이었던가. 작금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에 관하여 의견이 분분했다. 새 왕의 즉위식에 내린 것이 타락한 신수였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혹은, 신수가 타락하여 내린 것은 역모가 예견되어 있음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하는 이야기들. 이는 모두 역모를 주도한 이들이 신수와 왕의 손 끝에서 정리되어 나라가 다시금 평화를 되찾았기에 가능한 이야기들이었다.
왕은 백성들의 분분한 의견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않았다. 하여 이야기도 시간도 흐름에 따라 흩어지고 모이며 흘러갔다. 가루(加累)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물음 또한 어찌 없었으랴. 이 또한 하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꽃은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물길은 끊이지 않고 흘렀다. 이는 모두 가세를 기울이는 미꾸라지가 없기에, 저자에 떠도는 소소한 소문보다 인재를 양성하고 등용하여 빈자리를 채우고 무너진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화국은 태평성대(太平聖代)의 탄탄대로(坦坦大路)로 발돋움하였으니 이 어찌 영화(永和)가 아닐 지언가.
하나 나라가 안정을 이루고 나니 전과는 다른 화제가 성화였다. 화국의 정계에 자리한, 중앙 정치의 주축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근심이 싹을 틔우다 못해 간청이 되어 왕에게 오르니, 다름 아닌 국모의 자리가 공백인 탓이었다. 나라의 두 기둥 중 하나가 부실하니 그 자리를 채워 안정을 도모함이 옳다. 태양이 떴으매 곁에 달이 자리하지 아니한 것이 균형의 문제이다. 후대를 위해 여인을 들이심이 옳다. 저마다 옳다 여기는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핏빛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또한 왕의 곁에 자리한 흑빛은 여전하였기 때문이다. 빈 국모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가 일부 업무를 대행하고 있음은 익히 모르는 자가 없는 일이었다. 하나 그가 누구인가. 인간의 테를 입었다 한들 인간 외의 것이며, 지금에야 제 성질을 죽이고 이들 속에 섞여있다 한들 손짓 한 번에 만의 대군을 불살라 버리며 피를 취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신수였으니. 나라의 안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저들의 손익을 따져보는 사대부들의 눈에는 그들의 여식이 자리해도 모자랄 곳을 신수랍시고 떡하니 자리하고 있으니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간택령을 선언하는 것은 온연히 왕에게 주어진 권한이었기에, 월애궁(月愛宮)의 주인은 오늘도 청을 물리고자 하였다. 바득바득 자리를 지켜내며 의견을 굽히지 않는 좌의정은 아니꼬울지언정 나라가 현재에 이르기에 이바지한 신수에게 제 편을 들어줄 것을 눈짓으로 요청하였으나,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한낱 치들의 치기 어린 욕심이야 많은 인간들이 응당 지니고 있을 권력에의 욕구에 그 적을 두고 있음이 선하였으나 선을 넘지 않는다면 관조될 뿐이겠지. 그의 뜻은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에 앞서 왕도(王道)를 본으로 두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하니 부득불(不得不)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오늘도 좌의정임이 저명했다.
늦겨울, 매화가 몽우리를 터트리니 화국의 춘화(春化)가 분분(芬芬) 한 것이 봄을 맞이하는 향하(香霞)가 만개하듯 하다. 이를 반기듯 화성에서 사절이 도착하니 환영회의 일환으로 저자에 늦은 밤까지 불을 밝혀 시장이 열린다 하였다. 간택령을 함구시킨 화국의 주인 된 자는 제 곁을 지키는 신수를 들어 청을 하길, 저자에 내려가 야시장을 즐기고 오길 바란다 하였다. 연유를 구하니 인간들 속에 섞여 인간처럼 살아가길 원한다 하더라. 체념과 기대. 희망과 불안. 녹빛 눈동자에 한가득 담긴, 얽히고설킨 것을 덜어내지도 못하는 채로. 투명한 수면에 꽃잎이 나려앉아 둥그런 파문이 일지니, 그치지 않는 매화향내가 맴돌았다. 새장 없이도 손안에 머무는 새에게, 날갯짓이라도 알려 다른 세상을 보아라 청하는 이. 바라보는 것의 결정이야 뻔한 일이었다. 필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그에게 불요(不要) 한 일이었으며, 또한 그 끝이 불요(不撓)가 될지언정 그것을 바라는 이가 다름 아닌 눈앞의 이였기에. 인외의 것은 그 청을 당연스레 받아들였다.
이의 연장으로. 그것이 상해를 입는 일은 손에 꼽았으나, 생명을 지닌 것이 언제나 무이(無痍)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상(傷)을 입는 일이 있기 마련이었으며, 습격으로 입은 상흔에 고약(膏藥)을 바르는 눈앞의 이의 손길을 허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처야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지만, 그가 전능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또한, 상대가 유일한 예외이자 단 하나의 대상이었으므로. 다만, 그 상대가 지닌 속내를 뒤집어보지 않아도 알아차리게 된 무언가에 대해서는 내색하지도 일언반구(一言半句)조차도 하지 않는 채였다. 그저 언제나처럼 바라보고, 또 함께하며 변함없는 모습의 지속. 한없이 가까우나 가까워지지 않을 듯 멀기만 하더라. 그러니 갈구할 수 없으매, 품은 것이 독이 되어 메마르고, 또 기대와 실망의 그네를 타 바람을 따라 고저를 넘나들게 되는 것은, 검게 물들었을지언정 지고(至高)의 존재가 변함없이 자리함에 의함일 터였다. 이는 결국 씨가 없는 곳에 싹이 틀 수 없으며, 양분이 없는 곳에 싹이 자라날 수 없음이렷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끝내 미래가 교차한다. 운명이라는 이름아래 농락이라도 하듯, 이국(異國)의 것이 보여주는 잔상은 실재와 맞닿아 있었다. 기억이란 것은 소모되기 마련이라 그에게 남아있지 않은 것이라 한들 어이 손을 뻗지 아니하겠는가. 혹여 그를 현혹하고자 하는 것이건, 현존했던 시간이건 무관한 것이었다. 여느 때건 스스로의 선택을 잊지 아니하였기에 기꺼이 뛰어들었으나 애석하기 짝이 없음은, 다름 아닌 이것이 선택이 아닌 정해진 기로였다는 양 물기로 젖어있는 사유였다. 단편적으로 보아온 사(死)의 미래가 채 도래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처럼 그의 앞을 이끄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으나, 스스로를 물들인 존재는 그마저도 자신의 택이라 일컬었다. 뭍에서 물로, 마른 흙에서 젖은 흙으로. 보름이 휘영청 걸린 하늘 아래 물안개가 푸르러 이계(異界)를 꿈꾸는 듯하였다. 촛대 대신 불을 밝히는 반디는 물안개가 뒤덮은 풍경 속에 별빛처럼 알알이 박혀 빛나니 혹자는 꿈결로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아스라이 흩어지듯 한 풍경 속에 머문 이의 위태로움은 마주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끔 하였으나, 그것을 숨기는 데 어려움이 없는 이로써는 그마저도 마주하고자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다가가지 못함은, 자신으로 하여금 상대의 불안이 가속화됨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왕으로서 부족함이 보인다면 나를 내치거나 혹은 하늘로 돌아가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있은 후로부터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고 궁리해 왔으니까요."
"당신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오래, 이곳에 남을지. 내 곁에 있어줄지 말입니다."
"나는, 일이 이 지상에서의 업을 갈무리하고 떠날 그때까지 늘 곁에 있을 텝니다."
하늘에서 난 존재라 하여 전지하고 전능하지 못함을 명료히 알고 있음은 틀림이 없으렷다. 그렇다면 그것에게는 당연한 것이, 단 한 톨의 거짓 없는 진실된 말이 상대에게 닿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었던가. 앎에도 개의치 않았던가. 아니면, "내가 왕인 덕분에 당신의 곁에 있었지만 나는 당신에게 왕으로만 남고 싶지 않았으니까요."라는 말이 그에게서 직접 토해져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던 것인가. 아니, 그것은 알지 못했음이라. 서로 상동( 相同)하여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것은 오로지 그것에게만 한하는 이야기였으매, 인간이자 앓은 속을 켜켜이 쌓은 이에게 있어선 두 가지가 각각의 것이었음을. 이해할 수 없음이렷다. 범인(凡人) 일 수가 없는 이유를 방증하듯 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투신(投身)한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다. 저를 이루는 속성과 상극일지언정, 지났으나 지나지 않은 과거가 그러하였듯 그는 거리낌 없이 몸을 던졌다.
생(生)을 생(生)으로써 구하니, 스스로가 저버린 것을 다시금 손에 쥐는 것은 제 앞에서 스스로를 던져버린 이로 인함이었으니. 죽음을 사하고자 스스로의 것을 내던져 불꽃이 검게 타들어간 이와 생으로부터 스스로를 내던져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는 이가 만나 끝내 피어나는 것이 생의 불꽃이렷다. 검은 것은 벗겨지지 아니하였음에도, 붉은 것이 남아 있었다. 붉은 것은 꺼지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생을 꽃피울 테지. 그 꽃의 향일랑 매화의 것을 띄고 있음 직했다. 호숫물은 결국 담아내어도 흘러내리기 마련이고, 삼켜내어도 본연의 것에 비롯된 것이 아니기에 배출해 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젖은 것이 마를지언정 이미 젖었음을 부정할 수 없듯, 흘러내리고 뱉어내어도 잔재는 남아있게 될 일이었다. 그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또한 아닐 것이다. 하나 뿌리인 근원에서부터 갈라져 나옴은 변함없기에, 인간은 인간으로서 인간 속에서 살아가야 함은 틀림이 없으렷다.
화국의 시대에 나린 신수가 사회를 알아가며 깨달은 것이 곧 그것이었으니, 인간의 속에서 살아간다 하여도 인간이 되지는 못함이 어련할까. 검은 것들 사이에 흰 것이 있으면 혹자는 길하다 하나, 흰 것들 사이에 검은 것이 있으면 그것은 흉이라 여겨졌으니. 그는 배척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경외시 되는─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 길에 물드는 것이 무언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을지언정."
밀어내지 아니하나 포용하지도 아니한 채, 관조하고 방관하고. 또한 선이란 것을 무관히 여기며 드나드나 정작 스스로의 패는 내어 보이지 않는다. 왕이 사모를 담았을지언정, 분명한 답을 내어놓지 않은 이는 도리어 청이란 이름 하 왕의 연(戀)을 약조하였다. 그러나 감히 왕후의 좌에 스스로 자리하면서도 제 입으로 칭하는 일은 없었다. 스스로가 제 자리라 여기지 않고 때가 되면 내어줄 것을 잊지 않음과는 별개로 오해와 곡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왕의 곁을 보좌하는 것을 넘어 선을 거뜬히 넘어가면서도 그것은 기어이 자신의 선을 지켜내고 있었다. 하나의 방패로써, 동시에 하나의 검이차 창으로. 인간이 가지는 희로애락(喜怒哀樂)에야 어찌 비견할 수 있으랴. 그저 현재의 안온함을 그 역시 느끼고, 누리고 있음은 분명할지니. 물에 가득히 담아도 흘러내리고 마는 것을 구태여 퍼 담을 것이 능사는 아닐지어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 합을 이룸은 예부터 내려오는 일일 지어나 외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랑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로서니. 오로지 꽃길만이 펼쳐져 있다 장담하지는 못할 지언데, 소망으로서 그 안에 여물텐가. 늦겨울 피어난 매화일랑 이듬해에도 몽우리를 터트리는 것이 자명하거늘, 피고 지는 것이 수순인 계절 속에 타들어 묻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하니 春水滿四澤하나 千年一淸이니, 春來不似春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으렷다. 다만 하늘에 뜻이 있어 별로서 길을 알리노니, 관측하건대 그 뜻일랑 구름 속에 가려졌노라. 이처럼 아주 오래되고 끊어지지 않은 축복과 약속이 끝내 구름 속에 머무노니 무엇이 하늘의 뜻이옵고 무엇이 인간의 길일지언가.
비로소 나아갈진대 그야말로 왕도(王道)로소이다.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
봄물이 사방의 연못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봄이 되어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 못의 물이 불어난 것처럼 봄이 다가왔다는 의미.
千年一淸(천년일청)
천 년에 한 번 맑아진다는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가능하지 아니한 일을 바람을 이르는 말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으로, 어떤 처지나 상황이 때에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